〔전문가 칼럼〕 원자력과 신재생 에너지는 함께 가야 한다
최재삼 방사선카운슬링협의회 기획위원
우리는 때론 실리를 추구하고 때론 명분을 중시한다. 명분을 선택할 것이냐 실리를 선택할 것이냐는 각각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통찰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명분과 실리 어느 한쪽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으로는 올바른 문제해결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명분을 앞세울 때에도 실리의 가치를 세심히 살펴봐야 하고, 실리를 앞세울 때에도 명분의 의미를 충분히 돌아보고 거울삼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일궈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에너지문제가 놓여 있다. 명분과 실리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자원빈국이다. 1970년대에 전 세계를 강타한 오일쇼크는 자원빈국인 우리나라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불안정한 국제유가는 에너지안보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통해 에너지안보를 강화하는 정책을 펼쳤으며, 비교적 빠른 기간 내에 우리의 우수한 과학기술자들의 땀과 노력으로 한국표준형 원전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원자력은 기술력만 갖추면 국산에 준하는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자원빈국에게는 매우 유용한 에너지다. 실제로 원전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우리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우리 기술로 만든 한국표준형 원전을 UAE에 이어 유럽 지역에 첫 수출을 앞두고 있어 K-원전 르네상스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우리 원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제로라는 시대적 요청이 생겼다. 이에 전력산업계에서는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는 화석에너지를 대체하기 위해 함께 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동반에너지’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화석에너지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가 함께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동반에너지’라는 개념을 제안한 것이다.
국가 에너지정책에 있어서는 명분과 실리가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어서는 안된다. 지난 정부시절엔 명분이 실리를 앞서는 에너지정책을 펼쳤다.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놓고 보면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해 나가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명분도 있다. 하지만 명분을 선택해도 실리의 가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놓쳤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 원전산업 생태계를 파괴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다분히 실리적이다. 원전 선진국으로서 그동안 쌓아온 우리 원전산업의 경쟁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도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과 더불어 CFE(Carbon Free Energy)가 강조되며 원전의 역할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가 체코 원전 수출 우선협상국으로 선정되면서 국내 원자력산업계는 다시 한번 원전 르네상스로의 도약을 기대하고 있다.
탄소중립의 입장에서만 보면 원자력이든 재생에너지이든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를 것은 없다. 다만 지속가능한 미래사회 건설을 위한 명분과 실리의 관점이 다를 뿐이다.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는 함께 가야 한다는 ‘동반에너지’의 개념을 다시금 떠올리는 것은 명분과 실리 어느 한 쪽만으로는 직면한 에너지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조만간 확정될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안에 이 둘의 조합이 조화롭게 이루어지길 기대한다.